종교개혁 이후, 재세례파와 유니테리언
- Kyoungmin Lee

- 3일 전
- 2분 분량
알쓸신잡, 이단•사이비 시리즈
종교개혁 이후의 급진적 흐름: 재세례파와 유니테리언주의
종교개혁은 새로운 신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물결 속에서 루터와 칼뱅 같은 주류 개혁자들의 노선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류 개신교는 물론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도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급진적 흐름을 대표하는 두 그룹이 바로 재세례파와 유니테리언주의입니다.
*재세례파(Anabaptists): 급진 종교개혁의 물결
재세례파의 시작은 152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와 결별한 콘라트 그레벨과 펠릭스 만츠 같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고백할 수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신앙을 고백한 성인에게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재세례파는 초기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추구하며 철저히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교회는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병역, 공직 참여를 거부하는 등 철저한 평화주의와 비폭력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신념은 당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주장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사회 질서를 흔든다는 이유로, 재세례파는 가톨릭교회는 물론 루터파와 칼뱅파로부터도 이단으로 규정되어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물세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물로 처형하라'는 식의 잔인한 처형이 이루어졌고, 많은 재세례파 신자들이 순교했습니다. 비록 1534년 뮌스터 반란과 같이 극단적인 일부 그룹이 있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의 재세례파는 순교를 택했습니다. 이들의 정신은 오늘날 아미시(Amish), 메노나이트(Mennonites) 같은 평화주의적 교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 삼위일체를 거부한 신앙

유니테리언주의는 종교개혁 이후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며 나타난 신학적 사조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한다는 교리가 이성적이지 않고,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라는 구약의 가르침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입은 뛰어난 인간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는 삼위일체 교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주류 개신교 모두에게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결국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도시였던 제네바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유니테리언주의는 이처럼 순교의 역사를 거치며 이후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인간의 이성으로 납득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른 종교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유주의적 교파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재세례파와 유니테리언주의는 모두 종교개혁 이후 나타난 이단이었지만, 그 성격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재세례파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신앙 공동체의 순수성과 윤리적 실천을 강조했다면, 유니테리언주의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며 기독교의 근본 교리인 삼위일체를 부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정통 신앙은 재세례파의 윤리적 급진성을 비록 당대에 용납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원칙 일부는 현대 개신교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면 유니테리언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기에, 정통 교리와는 타협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탈로 여겨졌습니다. 두 이단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교회의 본질에 도전하며, 신앙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림은 유니테리언의 상징 로고인 Flaming Cha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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