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중세 시대의 이단들
- Kyoungmin Lee

- 9월 2일
- 2분 분량
초기 기독교가 이단과의 논쟁을 통해 교리의 정통성을 확립했다면, 중세 시대에는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에 저항하며 일어난 많은 운동들이 나타났는데, 이 중에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벗어난 '이단'과, 오히려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던 '신앙 운동'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중세의 교회는 로만 카톨릭이었고, 그때 교회는 세속의 권력을 가진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점과 이단으로 정죄된 운동들 중 일부는 종교개혁의 전통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세 나타난 이단은 아직 교회의 신학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과, 권력을 가진 교회가 타락하여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이런 중세 시기의 이단으로 대표적인 알비파와 왈도파를 살펴보겠습니다.
명백한 이단, 알비파
알비파(카타리파)는 중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이단입니다. 주로 프랑스 남부의 툴루즈와 알비 지역을 중심으로 퍼졌으며, 그 뿌리는 동방의 이원론적 종교인 마니교나 보고밀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알비파는 영지주의와 유사하게 물질은 악하고 영적인 것만이 선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악한 신이 물질 세계를 창조했다고 믿었고, 인간의 육체 역시 악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극단적인 금욕을 추구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인간이 되심)과 육체적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창조론과 구원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명백한 이단이었습니다.
이원론적 이단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경험하는 삶의 고통과 모순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는 세상에 왜 고통과 악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졌고, 이를 '악한 신'이 물질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원론적 해답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이단들은 복잡한 신학적 문제에 대한 간단하고 명쾌한 답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은 알비파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습니다. 처음에는 평화적인 설득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이단심문소’라는 제도를 만들었고, 결국에는 알비파를 멸절하기 위한 '알비 십자군' 전쟁까지 일으켰습니다. 강압적인 대응은 결국 알비파를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교회 역사상 가장 어두운 유산을 남겼습니다. 이단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와 폭력은 '종교재판'이라는 오명으로 남아, 교회가 권력으로 신앙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부정적인 선례가 되었습니다.

이단심문 제도는 12세기 후반에 시작해서 중세를 지나 20세기까지도 이어졌으며, 적게는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 수십만명까지 희생됐다고 봅니다. 유명한 인물로, 지동설을 인정했던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을 당했고,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동설을 부인하고 여생을 가택연금 상태로 보냈으며, 잔 다르크는 남자 옷을 입는다는 이유로 마녀이자 이단으로 몰려 19세에 화형을 당했습니다. 종교개혁적 사상가로 얀 후스, 존 위클리프, 프라하의 제롬 등이 이단 판결을 받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개혁을 꿈꾼 신앙 운동, 왈도파
알비파와 달리, 왈도파는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교회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프랑스 리옹의 상인이었던 피터 왈도가 청빈한 삶을 살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자국어(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평신도들도 직접 성경을 읽고 이해하도록 가르쳤는데, 이는 교황과 사제들의 권위를 통하지 않고도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교회는 그들을 이단으로 몰아 박해했지만, 그들이 추구했던 성경 중심의 신앙과 청빈한 삶은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이단 운동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성경적 분별의 중요성입니다. 아무리 경건해 보이는 금욕주의라 할지라도, 성경의 핵심 교리인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면 이단입니다.
둘째, 개혁 정신의 필요성입니다. 왈도파처럼 교회의 세속화에 저항하며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순수한 신앙 운동은, 비록 당시에는 이단으로 박해받았지만 교회를 갱신하는 중요한 불씨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거울에 우리 자신과 교회를 비추어 끊임없이 개혁하고, 이단과 건강한 신앙 운동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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