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기 3.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다리
- Kyoungmin Lee

- 6월 24일
- 2분 분량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기 전까지 400년 시간을 '침묵기'라고 부를 때, 성경 역사가 잠시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400년은 단절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약속이 신약의 복음으로 옮겨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놓아두신 '다리'와 같은 시간입니다.
중간기를 이해하면 구약의 마침표가 어떻게 신약의 시작이 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유대인의 고통 속에서 메시아를 향한 갈망은 커져왔습니다. 다윗 왕처럼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해 영광을 회복할 왕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로마의 압제와 부패한 현실 권력을 단번에 무너뜨릴 해방자를 기다렸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악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끝내주시리라는 종말론적 소망도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400년을 지나서, 구약의 끝과 신약의 시작을 연결하는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신대로(마 11:14), 세례 요한이 바로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엘리야'였습니다(말 4:5). 말라기가 외쳤던 간절한 회개의 메시지(말 3:7)가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마 3:2,8,9)로 이어집니다. 그는 구약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에게, 그 터널의 끝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확실한 이정표였습니다.
마침내 오신 예수님은 단순히 시대의 요구를 들어주러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이 겪어온 모든 역사를 자신의 몸으로 체화하며 그 완성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만든 수많은 규칙 대신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고, 인간이 만든 건물 성전 대신 자신이 직접 '참 성전'이 되어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영원한 통로가 되셨습니다. 포로기에서 시작해 수많은 고난을 견뎌온 이스라엘의 비극적 역사를 자신의 십자가로 가져가 승리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은 바로 이 긴 역사의 과정을 관통하는 선언입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400년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통해 준비하신 모든 퍼즐 조각이 이제 완벽하게 맞춰진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중간기의 역사를 살펴본 것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때 오셔야 했는지, 그 당위성을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침묵'이라 부르는 시간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400년의 기다림 끝에 예수님을 만났듯, 지금 우리가 겪는 답답한 기다림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구약의 약속을 신약의 복음으로 연결하는 그 놀라운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십니다.
우리가 말라기와 세례 요한의 외침 앞에서 주목해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를 들었던 당대의 종교인들은 나쁜 사람, 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종교적인 의무에 성실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진짜 비극은 죄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자기 확신에 있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은 껍데기만 남은 제사를 드리면서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혔나이까'라고 했고, 요한 때의 유대인들은 '우리에겐 아브라함이라는 완벽한 혈통적 신분증이 있다'며 안심했습니다. 종교적 행위와 배경이 자기의 실존적 부패를 가려줄 것이라는 '거룩한 착각'이 그들의 귀를 막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직분 뒤에, 예배에 참석했다는 안도감 뒤에 숨어, 정작 내 일상 속에서 맺어야 할 '정의와 사랑의 열매'를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는 감정의 영역이 다가 아닙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진리 앞에 내 실상을 직면하는 '지적이고 영적인 혁명'입니다. 우리에게 늘 새로운 회개가 있어서 우리를 향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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