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것이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입니다. 사도신경은 Apostles creed라고 하며 사도 즉, 예수님의 제자였고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던 사람들이 고백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도신경에 대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예배 순서에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으면 이단이다.’, ‘개신교의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지옥에 갔다 오셨다는 내용을 뺀 반쪽이다.’, ‘사도들이 한 구절씩 믿음의 고백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아니다, 사도들이 만든 고백이라고 볼수 없다.’, ‘거룩한 공회는 카톨릭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서 개신교의 신앙고백으로 쓸수 없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내용은 성경적이지 않다.’


이번에는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우선 사도신경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와는 그 권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의 권위는 사도들의 믿음의 고백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는 말만 있을 뿐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추척해보면, 초대교회 즉, 2세기의 교회에서 세례를 행할 때 믿음을 고백하던 것이 3세기 이래로 발전하여 사도신경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4세기가 되어 처음으로 사도신경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사도적 기원과 설화가 나타났습니다. 5세기 들어서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10세기 완결된 형태로 오토 대제에 의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과 함께 서방교회에서 공식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과 믿음을 근거로 교회가 형성해 온 공식적 신앙고백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4세기, 현재의 형태는 5세기에 나타난다고 하니 사도들은 다 죽은 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또한 3~5세기 교회의 신앙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당시 교회의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1,000년 이상 지나서 형성된 개신교 신앙과는 딱 맞아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이 지옥에 갔다 오셨다는 내용이 빠졌다는 말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어 사도신경의 경우 예수님이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지옥에 가셨다(descended into hell)는 내용이 있습니다. 실은 영어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거의 대부분의 사도신경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 성공회 사도신경에도 있고, 카톨릭의 한글 사도신경에도 있어서 한국 개신교의 사도신경에만 그 내용이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입니다. 카톨릭의 연옥 교리를 증거하는 듯하는 내용이라서 뺀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은 일부의 내용을 삭제한 사도신경을 온전한 것이라고 할수 있는가, 또 그 사도신경이 개신교의 신앙고백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볼 때 사도신경의 정통성에 논란이 되는 점이 있으며, 실제로 개신교 주요 교단 중에 사도신경을 거부하고 고백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논란이 되는 부분은 ‘거룩한 공회’라는 말인데, 이것은 Catholic Church로 카톨릭 교회로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의 공교회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부분을 카톨릭 교회로 읽을 것이고, 개신교에서는 공교회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기에 주관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부분도 논란이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했으며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으로 표현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 세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세력이며, 그들의 선동하여 예루살렘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압력을 행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그 압박에 못이겨 손을 씻으며 그 죄를 백성들에게 돌렸다고 증언합니다. 사도신경의 표현은 예수님의 죽음이 빌라도로 대변되는 로마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도신경은 교회가 고백하는 믿음의 기준으로 맞지 않는 것인가요? 그것을 제가 확실하게 어떻다고 말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대신 캘거리 제일감리교회는 어떻게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우리 교회 예배 순서에는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주기도문)로 합니다. 그러면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예배를 마쳐야 할 경우(담임목사가 출타중일 때)에는 신앙고백 순서에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필요한 경우에는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형성된 믿음의 고백이기에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사용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로 함께 기도하는 것이 더 은혜가 됩니다. 또 필요한 경우에는 감리회 신앙고백(calgarykm.com 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주제는 교단마다, 또 목사님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가 안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고백하고, 그 믿음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사는대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믿는 대로 사는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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