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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목사의 알쓸신잡 02] 개신교 교단들에 대해서

교회 밖의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왜 같은 기독교인데 교단이 여럿이냐’, ‘왜 나눠지고 분열했냐’

질문을 받고 보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원자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다르지 않은데, 왜 교단들이 많은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또 교회마다 분위기나 강조하는 게 다르기도 한 것 같은데 정말 같은 믿음을 가진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렸을 때는 순수한 마음에 모두가 하나되고 한 믿음 안에서 마음과 뜻을 모아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멋진 교회를 상상했지만 현실에 그런 교회는 없었습니다.

교회들은 모두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고, 성도들은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요? 진정한 믿음은 단 한가지 똑같은 모습이어야 하는 것일까요? 믿음의 본질을 지킨다면 어떤 면들은 다를 수 있고, 달라도 괜찮고, 그 모든 모습들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단이 아니라면요.


다양한 교단들의 역사와 특징을 살펴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분들이 잘 정리한 자료들이 없지 않기에 저는 이런 생각에 대해서 관점을 나누려고 합니다.

출석하시는 교회와 다른 교단의 교회에서 예배 드려본 적이 있나요? 요즘엔 교단 차이보다 개교회의 차이가 더 크고 중요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교단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분위기가 다릅니다. 다르다면 무엇이 그 여러 교단들을 개신교라는 이름으로 볼수 있게 할까요? 바로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같습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으며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카페라고 하면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과 같고, 또 모든 카페가 똑같은 맛의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맛이 다른 다양한 커피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카페의 본질이 커피라면, 각 커피의 맛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본질은 같고 특징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글의 머리에 예를 든 질문에서 교회가 왜 이렇게 싸우고 분열하냐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아마도 개신교가 카톨릭으로부터 갈등하며 분리된 것과 어떤 교회들이 갈등하고 분열한 것을 보거나 들어서 그 이미지로 개신교의 모든 교단은 분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갈등으로 인한 분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교단이 갈등과 분열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제가 아는 감리교회를 예로 들면, 그 뿌리는 영국 성공회에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회는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됐습니다. 카톨릭과 성공회의 분리는 갈등과 분열이라기 보다 정치적인 배경 때문이었고, 감리교회의 경우 창시자 존 웨슬리는 성공회의 사제였고 끝까지 성공회 사제였습니다. 웨슬리를 중심으로 한 신앙운동이 교단으로 성립된 것이지 갈등으로 인한 분열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가운데 특별한 신앙운동이 일어나고, 그 운동이 좋은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서 교단이 만들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개신교 교단의 형성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물론 갈등으로 인해서 나눠진 교단도 있습니다. 신앙적인 갈등도 있고, 정치적인 갈등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신앙의 본질이 일치하더라도 어떤 부분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신앙의 다양함과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신교 교단이 많은 이유를 분열로 보는 관점 말고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두 가지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는 역사적인 배경 하에서 특징이 다른 다양한 교단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신앙운동이 교단이 되는 경우는 당연히 그렇고, 갈등의 결과로 분리된 교단도 크게 보면 역사적인 배경이 있어서 생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리의 때마다 아주 중요한 일들이 있었고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함께할 수 없는 경우 나눠진 것입니다. 너무 좋게 포장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관점을 바꿔보는 것이고, 현재의 모습을 평가할 때 부정적인 면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도 보자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면은 뭐가 있을까요? 이것이 두 번째 의미인데, 신앙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조금 살펴보면 교회들이 다 같지 않은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한 성경을 읽고 나누는 해석과 메시지가 다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경건을 추구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실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조금씩은 다르다고 해도 신앙의 본질은 같습니다. 신앙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 것도 그 본질에 속합니다.


다른데 괜찮은 것일까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지만 사람이 진리를 이해할 때, 진리를 경험할 때 그것이 똑같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해와 경험이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사람이 완전한 진리를 어떻게 알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소경이 코끼리 만지듯 우리가 아는 다양한 하나님의 모습과 진리를 다 살려야 합니다. 진리가 하나라고 종교를, 교단을, 진리에 대한 표현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에 개신교가 하나의 교단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 권력의 입맛대로 교회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강제로 통합한 것입니다. 이 예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권력의 통제 아래 있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한국 개신교가 하나의 교단이었던 때가 그때입니다.


만약에 누가 왜 교회는 그렇게 교단이 많고 싸우고 분열했냐고 묻는다면 친절하고 차분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단은 여럿이지만 신앙의 본질은 하나고 우리 집과 다른 집이 분위기나 문화가 다른 것처럼, 그래도 어느 한 집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것처럼, 본질 외적인 부분은 다양한 것이다. 그리고 싸우고 분열한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형성된 것이다.

모든 교회가 똑같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다양한 신앙의 특징은 진리를 풍성하게 표현한 좋은 모습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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