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생략된 것
- kfmc.calgary
- 2022년 11월 1일
- 2분 분량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수록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중요한 것과 필수적인 것을 생략함으로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방법에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여호와’라고 번역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사실 발음을 알 수가 없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단어를 소리내어 읽지 않고 박자를 쉬고 읽거나, ‘아도나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읽어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생략함으로 강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이 말씀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구하면, 누가, 무엇을 주시는지’ 등 빠진 내용이 많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생략된 부분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되묻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목사님이 얘기해 주시기를 기다리시나요? 목사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도 귀하지만, 정말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말씀은 내가 읽고 묵상하고 소화해서 적용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에서 구하라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로 생각하고, 그래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 성경 말씀에 예수님이 그러셨다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구하면 다 주신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을 믿음이 좋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현실의 삶이 그런가요? 아닙니다.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렇게 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그렇게 이해해 버리면 신앙과 삶에 모순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구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해석하기에 따라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라는 말씀이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는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라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생략된 부분은 교회 전통 안에서 이루어진 해석을 따라 전해지는 설교로 채워지고, 또 많은 부분은 그 말씀을 읽고 듣는 사람의 욕구와 상상으로 채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원래 말씀의 뜻과 다르게 엉뚱한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사용입니다. 성경에 나온 말이라고 다 성경적인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뜻을 담고 있어야 성경적인 것입니다.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무관심과 하나님의 뜻이 아닐지도 모르는 다른 것들로 채워진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되는 것은 아닌가? 또 그 안에 은혜라는 이름의 욕구 충족 가상 체험이 소비되고 마는 것은 아닌가 의심도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살아있고 생명력 있는 능력이 되려면 말씀의 빈자리, 생략된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오래도록 묻고, 끈질기게 묵상하여 깊이 통찰하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삶 가운데 매 순간 허락하시는 은혜가 귀하지만 그것으로 다 알았다고 섣불리 하나님의 뜻을 쉽게 깨닫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은혜도, 구원도, 깨달음도 평생에 걸쳐 찾아가는 겸손한 마음과 지혜를 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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