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고대 문명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에 대한 기억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에서 시 작하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로 인간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아담으로 시작한 족보는 두 번의 변화를 경험하는데, 노아 때 홍수 심판으로 인류의 새창조라는 전환을 맞이하고, 아브라함에 가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됩니다.


노아 이후 세계 민족들의 계보를 창세기 10,1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11장의 마지막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의 죽음을 기록하고, 창세기 12장의 아브람(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한 역사로 바뀝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이슬람교와 유대교와 기독교가 조상 혹은 시조로 삼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아브라함과 세계 4대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두 문명의 관계와 영향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고 자랐던 고향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지역으로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살았던 아브라함의 가족들은 최초의 문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를 배경으로 살았습니다. 우르는 그 중에서 수메르 문명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이라크 남부 지역에 있던 중심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족들과 하란으로 이주했고(창 11:31) 그곳에 머물다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점점 남쪽으로 옮겨가다가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창 12:9,10). 아브라함이 이집트 문명을 접한 것이 이때입니다. 이집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파라오를 만나기도 하고, 파라오가 사래를 데려갔던 일로 아브라함에게 큰 재산을 주었고, 종들도 주었습니다. 창세기 16장에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자, 아브라함에게 여종인 하갈을 주어서 결혼하게 했는데, 하갈이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런데 이 하갈이 이집트 사람이었습니다(창 16:1).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집트에 잠깐 거주했던 것이 다가 아니라, 그의 집안에 이집트 사람들이 있었고, 그 문화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과 이스라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곳을 나와서 가나안 땅에 살다가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의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이 두 문명의 영향이 나타날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아브라함이 그곳을 떠나왔다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기본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이것이 성경의 내용과 수메르 문명의 유사성이 나타나는 이유일 것입니다. 수메르 문명의 이야기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노아 홍수와 비슷한 내용의 대홍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함무라비 법전이나 그 이전의 법전들과 성경의 율법이 유사한 부분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일부 혹은 아류인가 하면, 그렇게 보기에는 성경의 독특함과 차이점이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줍니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확실히 다른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집트 문명은 아브라함 때 뿐 아니라 조금 후대이지만 요셉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들어가서 수 백년을 거쳐 큰 민족으로 성장하도록 살았고, 모세 때 이집트를 나왔으니 출애굽한 이스라엘 공동체에 이집트 문화의 영향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살펴볼 때 성경의 하나님 말씀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도 있고, 이집트 문명의 영향도 있겠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서 민족을 이루게 하신만큼 이 두 문명과 다른 독특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또 다른 명칭인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성경의 가치와 이스라엘의 전통은 이 두 고대 문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또 반대로 이 두 문명과는 확실하게 다른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있었습니다.


이 두 문명은 다신교의 종교적 특징을 가졌으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유일신 신앙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다신교는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제물을 드려 신을 달래고 이용하는 접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신앙은 인간이 그 존재 가치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따르는데 두고 있습니다. 완전히 반대 방향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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