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까치밥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 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 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 주고 있지 않으냐.


- 송수권, 「까치밥」 *말쿠지: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 갈고리'의 평안도 방언. 흔히 가지가 여러 개 돋친 나무를 짤막하게 잘라 다듬어서 노끈으로 달아맨다.

*보시(布施):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풂

조회수 11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희망봉

녹슨 대못

녹슨 대못 / 운계 박 충선 박힌 채로 구부러진 녹슬어 붉은 몸 부식으로 터진 껍질 털어내지 못하고 바람 벽에 핏물을 흘리고 있는 깊숙이 박힌 대못은 그리도 고약한 내 고집의 형상이로다 스스로는 바로 일어 설수도 곧게 펼수도 없이 시신처럼 굳어버린 고집은 꽉 물고 있는 아집의 이빨 아파할 줄 모르고 비의 씻김도 마다하고 더 흉하게 녹슬어 가는 구부러진 대못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