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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목사의 알쓸신잡 03] 우리나라의 기독교 선교에 대해서

 우리나라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해진 시간은 100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천주교는 임진왜란 이후로 접촉했고 조선의 학자들이 학문으로 서학을 수용했으나 보통은 이승훈이 조선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1784년에 전해진으로 봅니다. 개신교는 100년 후인 1884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맥클레이(Robert Samuel Maclay)가 고종의 윤허를 받고 다음해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 Henry Appenzeller)가 같은 배를 타고 입국해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각각 전해졌던 시대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합니다. 조선 후기에 전해졌던 천주교는 유교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조선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봉건군주 제도를 유지하던 조선에 만인평등 사상의 씨앗이 되었고, 그에 따라 여성의 인권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제사를 거부했던 초기 천주교인들은 조상 신을 잘 섬겨야 잘된다는 인식에 도전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쇠퇴해가는 조선 후기에 새로운 시대를 보게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움직이는 영향을 주었습니다.

 초기 선교시 천주교는 조선 조정의 박해를 받았고, 개신교는 대한제국의 승인 하에 선교를 했던 차이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조상 제사를 거부한 것으로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혹독한 박해로 신자 황사영이 중국의 주교에게 박해 소식을 전하며 무력 침공을 통해서라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달라는 ‘황사영 백서’를 보내려다가 붙잡혀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개화기에 들어왔으며 처음부터 고종 황제의 허락을 받아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의료와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는 환영을 받으며 선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와 개신교의 선교 초기 상황이 다른 것은, 전래시 사회적인 상황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볼수 있습니다.

 개신교가 전해진 것은 대한제국 시대였습니다. 세계 열강들에 의해서 강제로 문호가 개방되고,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기 위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개신교는 희망을 잃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했고, 서양의 문물을 소개했으며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3.1운동 이후 교회가 친일로 기우는 등  암흑기로도 볼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민족의 고통을 위로하며 뿌리 내리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친미, 친권력의 흐름과, 반대로 민주화, 노동운동, 빈민선교와 닿아있기도 합니다. 개신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과 민주화 과정을 함께하며 명암을 보이지만, 그만큼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미션라이프 지난 호에서 다룬 종교 인구 통계를 보았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참고했던 2022년의 통계와 달라진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참고한 2022년의 통계 자료가 상대적으로 높게 조사되고, 지난 칼럼의 자료는 현실적으로 조사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통계 수치를 보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종교인 비율은 줄어들고 있고, 교회도 그 물결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 날이갈수록 전통적인 종교의 신자가 감소하는 것은 드러난 흐름이고 예상하는 일이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그 속도가 급하게 빨라졌고, 기존 교회의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교회는 아직 명확한 방향도 찾지 못하고 제각기 길을 찾아 헤메고 있습니다.

 

 위기는 도전이며, 도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앞으로의 모습을 정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교회는 여전히 있겠지만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고, 대안적인 방향을 찾는 교회들이 나타나고 흐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무엇으로도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수 없듯이 통계의 숫자는 줄겠지만 그러는 중에도 복음의 본질과 신앙의 가치는 교회를 통해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천주교를 만난지 239년, 개신교를 만난지 139년입니다. 그 시간의 역사와 함께했고, 의미있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와 함께한 종교는 부흥하고 쇠퇴하지만 그 정신이 유산으로 남습니다. 또 지향하는 가치가 의미가 있다면 믿는 자들의 삶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확실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글은 캘거리 지역 한인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이경민 목사의 알쓸신잡 세번째, 우리나라의 기독교 선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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