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시대, 기독론 논쟁
초대교회 시대(1-4세기)는 예수 그리스도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을 하면서 기독론(예수가 어떤 분인지)을 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백하는 신앙의 중요한 부분들은 교회가 생긴 이후의 역사 속에서 하나씩 형성되어 온 것입니다.
(이미지는 카톨릭에서 미사 때 사용하는 니케아 신경 영문 번역)
논쟁을 통해서 잘못된 신앙이라고 판단된 주장은 이단이 되었습니다. 원래 잘못된 이단이었다기 보다, 신앙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시대에 조금씩 다른 신앙 형태들이 있었고, 논쟁을 통해서 정리되면 정통 신앙과 다른 신앙은 이단으로 규정된 것입니다.
이 시대 논쟁의 내용은 단순하게 말하면, ‘예수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였고, 결론은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 완전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예수가 사람으로 나셨음을 부정하는 주장을 거부하며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100% 하나님이며 100% 사람’이라고 정리가 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의 오리겐이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했고, 반면 안디옥의 테오도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와 감독인 아타나시우스가 논쟁하는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고,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한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은 동일한 본질을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이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낮추어 인간이 되셨다’고 주장한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이 정통이 되었습니다.
또 100여년 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 예수가 분리된 인격으로 존재했다고 주장해서 431년 에베소 공의회를 통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이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된 후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에까지 전파되었고,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에 ‘경교’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지기도 했습니다. 당나라를 거쳐서 신라에까지 전해졌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개의 완전한 본성(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두 본성은 혼합되거나 변화하지 않고 완전한 하나의 인격 안에 통합되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칼케돈 신조로 기독론 논쟁은 끝나게 됩니다.
‘예수가 구원자 그리스도다. 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는 것이 초대 교회가 전했던 복음입니다. 그러니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분의 인성과 신성은 어떤 관계인지, 그분은 사람이었는지, 하나님이었던 것인지에 대해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주장이 있어서 정리되야 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주장과 논쟁을 통해서 성경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신앙을 형성한 역사입니다.
지금 온 교회가 고백하는 ‘예수가 그리스도시며, 나의 구원자시고, 하나님이며 사람이셨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했기에 가장 먼저 논쟁이 되었고, 정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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