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이라는 말


말은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은 인생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말을 제대로 하고 글을 제대로 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적당히 대충 말하고 글을 쓰면 삶의 자세도 명확하지 않고 생각도 흐릿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말로 생각하고 말로 이해하고 그 틀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일에 대해서도 대충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적이다’, ‘믿음이 좋다’는 말이 바로 그런 중요한 말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신앙은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러면 ‘신앙적’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핵심만 말하면, ‘그 믿는 바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에서 ‘믿는 바’는 무엇인가요? 사도신경의 내용을 참고하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의 전능하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믿고, 성령이 나와 함께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믿는 것’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을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인간 내면의 작용이기에 사실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고, 그것으로 짐작할 수는 있지만 명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신앙적이라고 평가하고 또 어떤 생각에 대해서 그 생각은 신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 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믿음이 좋다’고 참 ‘신앙적’이라고 말하고 ‘신앙적인 자세는 이래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어떨 때 그런 말을 하죠? 어떤 사람이 교회에 잘 다니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믿음이 좋다고 합니다. 또 말을 할 때, 교회에서 많이 쓰는 교회 용어들과 은혜로운 표현들을 많이 하면 그렇게 생각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 사람들에게 신앙적이고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기분은 좋겠지만 그것이 진짜로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성경 말씀을 통해 주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눅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캘거리의 교민 성도님들께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남의 신앙을 판단하지 말자>

우리가 교회에서 쉽게 누군가를 신앙적이고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이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신앙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그것은 사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남의 신앙을 판단하는 일이 내 신앙에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해를 끼칩니다.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믿음을 따라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나 자신을 돌아볼 때만 묻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에게 신앙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자>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 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좋은 믿음 가지고 신앙 생활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정말 귀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평가를 사람에게서 구한다면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는 것은 진실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우리 마음 중에도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신앙 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려고 노력하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또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만남을 갖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에 매일 힘쓰고, 깨닫고 알게 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사는 길입니다. 하루 하루 이 일에 더욱 깊어져 가는 것이 믿음의 성장이요 성숙입니다.


COVID-19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 때 성도들이 주님 닮은 모습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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