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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카톡 메시지를 보낼 때 제대로 못 알아 듣고 오해가 생기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처음엔 상대방이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듣나 답답한데 가만히 생각해보고,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오해할 만 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상대가 말귀가 어두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길을 알려줄 때, 내 기준으로만 얘기하면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경험도 해봤을 것입니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을 생각하고 내가 보는 방향에서 설명하지만, 상대가 보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고,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흔하게 겪는 오해와 착각, 그리고 배려 이런 것들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은 신앙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인격이나 성격 아니면 심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큽니다. 하지만 신앙에 그런 것들이 관계 없는 것이 아니니 신앙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우주의 모습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략은 그려볼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잘 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우주를 보던 관점은 지구는 가만히 있고 그 지구를 중심으로 하늘 위에 별들이 돌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주의 모습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움직이지 않았고, 하늘의 해와 달은 떴다가 지기를 반복했고, 밤에 보이는 별도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행성이며, 스스로 하루에 한 바퀴 씩 돌고,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돌기 때문이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원 궤도를 그리며 돌고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일년이라는 것을 압니다. 놀라운 점은 우주에 나가서 보고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보이는 해와 달과 다른 천체들의 움직임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보았던 바로 그 천체, 똑같은 모습을 보고서 알아낸 것입니다. 망원경으로 좀 더 잘 보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실 우주가 어떻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든 우주의 변방이든 우리가 사는 삶에 별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만 아는 인생과 모든 인생들이 각자의 인생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인생은 달라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인간이 우주의 탄생과 변화를 연구하고 많은 부분을 밝혀내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내 기준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나 중심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경험을 겪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완전한 이해가 어렵고 오해와 오해로 인한 갈등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알 수 없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고, 다른 생각이 가능하다는 것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을 얘기하면서 3절에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합니다. 위에서 말한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깨닫는 것이 뭔가 히브리서 말씀과 통하는 느낌이 듭니다.

마술을 볼 때, 눈에 보이는 모습과 진실이 다릅니다. 화질 좋은 텔레비전으로 무엇이든 볼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그것이 텔레비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경험들도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의심하고 믿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들은 다른 방향으로도, 다른 관점으로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세상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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