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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얼마 전에 미녀와 야수 뮤지컬을 관람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과 호흡을 함께하며 연기하고 노래하는 한편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뮤지컬을 본 후 궁금해서 찾아보니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유럽의 전래 동화였고, 1740년에 가브리엘수잔 바르보 드 빌레느브 부인이 잡지 Magasin des enfants, ou dialogues entre une sage gouvernante et plusieurs de ses élèves에서 처음 이야기 형태로 출판했고,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잔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Jeanne-Marie Leprince de Beaumont) 부인이 빌레느브 부인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으로, 1756년 Magasin des enfants, ou dialogues entre une sage gouvernante et plusieurs de ses élèves에 수록되어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전래 동화는 여러가지 버전이 있으며, 출판된 이야기를 원작으로 본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녀와 야수는 이 원작으로 바탕으로 디즈니에서 각색하고 에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원작과 디즈니 에니메이션은 내용에서 차이가 좀 있습니다.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면 야수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왕자인 주인공이 한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을 줍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지만 세상을 좀 살아본 어른으로서는 그와 다른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미녀와 야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구조가 남성에 대해서 무능하고, 악하며 모자란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주인공은 야수가 아니고 미녀인 벨이었습니다. 디즈니의 이야기에서는 벨에게는 어머니도 없고, 그녀를 보호해야 할 아버지는 무능력한 공상가에 엉뚱한 발명가였습니다. 보호해 줄 부모의 빈자리가 크지만 벨은 미녀일 뿐 아니라, 지적인 수준도 갖춰서 책을 읽는 것이 강조됩니다. 지적인 미녀 벨은 착하기까지 합니다. 말썽을 일으키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야수의 성에 붙들리고 아버지를 구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남자 중 첫 번째는 무능한 아버지였고, 두 번째는 힘세고 멋진 외모에 사람들이 따르는 능력자 게스톤입니다. 그는 딱 두 가지가 부족한데, 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지적 능력과 착한 마음입니다. 그 다음 남자는 야수인 왕자입니다. 야수는 현재 상태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야수의 힘과 성주로서의 재력입니다. 그에게 없는 것은 지성과 진정한 사랑입니다.


미녀와 야수에는 이상적인 여성 벨과 모자란 남자들이 나옵니다. 벨은 못난 아버지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이미 완성된 인간이고, 남성들은 많이 모자란 존재들로 보입니다. 그나마 가진 것도 나쁘지 않고, 멋진 외모와 지성과 진정한 사랑을 가능성으로 가지고 있는 야수가 조금 나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서양판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벨을 주인공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아름다운 외모에 착한 마음을 가지면 이상적인 여성이 되는 다른 디즈니 이야기나 또 아름다운 외모가 곧 지성이며, 착한 것이 되는 외모지상주의 현실과도 차별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구도는 원작인 전래 동화와, 글로 쓴 사람의 무의식과 상상력에 디즈니의 상업주의가 합해져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인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벨이 이상적인 여성으로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여성이 약자이며 의존적인 현실을 반대로 뒤집은 모습이고, 어리석고 모자라고 폭력적인 남성의 모습은 여성을 억압하고 권력을 차지한 남성에 대한 반감과 남성은 세심하지 못하고 둔하며 권위적이거나 무능하다는 편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성인 제가 이 뮤지컬이 불편했나 봅니다. 그리고 현실을 반영한 모습과 남성들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남성과 여성을 짝을 이루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봅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나 기독교 신앙적으로 남녀의 짝은 서로의 부족함을 도우며 서로를 성장할 수 있게 영향을 주는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부족함과 아픔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신체적 특성이나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서 이런 저런 특징이 나타나지만 그것이 남성이라고, 혹은 여성이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연약한 한 인간이며,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연인이나 배우자로 짝이 되었다면 감사할 일이고, 서로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여겨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미녀와 야수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자기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 15: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가 사랑할 사람을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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