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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민 목사의 알쓸신잡 04] 로마에서부터 제국주의 선교까지

 이번에는 선교 역사의 어두운 기간을 다루려고 합니다. 글을 시작하며 조심스러운 것은 지난 역사를 비판하며 나는 의로운 척 하려는 교만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기독교 신앙과 선교의 어두운 면을 분리할 수 없고, 지금 우리가 몸 담은 개신교회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위험이기에 돌아보고 반성하고 교회가 가야할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초기의 교회는 두 그룹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을 위주로하는, 예루살렘과 사도들 중심의 교회고, 다른 하나는 바울의 영향력을 따라서 이방인을 중심으로 선교하며 확장하던 교회입니다. 이 두 교회는 유기적 관계를 갖으며 새로운 신앙을 형성했고, 지금 우리는 초대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초대 교회는 박해의 시대를 지나서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순교하지 않고, 순수하지도 않고,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는 종교가 된 것입니다. 조직화, 형식화가 강화되면서 제국주의 시대와 맞물려 서구 제국주의의 수호자, 또 식민지를 교화하려는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정복하는 교회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교회는 로마의 국교로 시작해서 제국주의 시대까지 카톨릭의 역사와 겹치지만 비판적으로 보려는 대상은 카톨릭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자기 중심적이고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욕망입니다. 현재 개신교도 이 '정복하는 교회'라는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이것은 우리의 얘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시기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들은 대략 생각나는 것들만 언급해도 적지 않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200여 년간 서구 기독교 세력이 예루살렘의 탈환을 명분으로 이슬람 세계를 공격했던 전쟁입니다. 지금 보면 순수하게 신앙적이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도 않았으며 얻은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또 ‘마녀 사냥’은 12세기 정도부터 18세기쯤까지 유럽에 있었던 일로 교회법으로 심판하는 특별 재판인데, 명칭에서 알수 있듯 여성들이 많이 희생됐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교회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일을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했던 살인 행위 입니다.

 유럽의 제국주의 카톨릭 국가들이 식민지를 지배해 갈 때 교회는 선교를 명목으로 제국주의에 정당성을 제공했고, 식민지의 문화와 종교는 미개하고 미신이며 기독교로 교화해야 한다는 정복주의 선교로 세계 역사에 상처를 남기고 선교 역사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개신교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임진왜란 때 이미 카톨릭이 전해졌던 일본 군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신자였고, 그 부대는 기리시탄(크리스천) 부대라고 불렸으며 부대원들도 대다수 신자이며 그 부대에 스페인 신부인 세스페데스[1]가 있었습니다.

 성공회가 국교였던 영국이 식민지배했던 지역인 미국, 캐나다, 호주는 교회가 원주민에 대한 정부의 말살 정책에 함께 했으며 근래에 그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의 선교 역시 제국주의 흐름과 함께 했으며, 우리 역사 가운데, ‘제너럴 셔먼호 사건[2]’에서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역사에서 교회가 권력과 손을 잡고 타락하는 일은 많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립과 더불어 가장 힘을 가졌던 종교는 단연 기독교였습니다. 미국과 연결되면 뭐라도 할수 있던 시대였고, 교회를 통하면 미국의 선교 후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 근대 역사에서 기독교가 기득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잘못한 일이 적지 않습니다.

 또 우리 나라의 경제 개발기는 개신교의 폭발적인 성장 시기와 겹칩니다. 이 때 교회는 극도로 대중화 되었고, 대형 교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한국 교회 급성장의 부작용으로 부정적인 자본주의 가치가 교회를 침범했습니다.

 

 사도들의 전도와 바울의 선교를 통해서 교회는 확장되었고, 지금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짚어 본 교회의 지난 발자국은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잘못이 있고 나쁜 모습이 있다고 그것이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고해서 사탄이 지배한 악마적인 교회도 아닙니다. 부족하고 미숙해서 실수했던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 모습을 그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야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교회가 지금 우리 교회의 뿌리이며, 그런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 속에도 순수한 신앙의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은 교회의 잘못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그 교회에서 이어온 교회가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도 만났고, 여러분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전망은 많지만 미래는 알수 없습니다. 다만 이 지구에 인류가 존속하는 한, 복음의 진리가 인류의 희망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교회가 찾아야 할 길이고, 나갈 길입니다.


[1]    그를 종군 신부로 볼수 없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2]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내용과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그리고 그 사건과 관계된 선교 초기의 역사들을 검색해 보세요(검색어 ‘토마스’, ‘박춘권’, ‘박영식’, ‘길선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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