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 이야기

지난 주에 성경의 역사 이야기를 다뤘고 이번에는 성경 이후 교회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 보겠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한번 훑어 본다고 생각하시고 큰 틀을 살피는데 의미를 두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교회사 시대 구분을 통해서 거시적인 눈으로 보겠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교회 역사의 마지막은 사도행전이 담당합니다. 교회의 탄생 그리고 전도와 선교 이야기입니다. 유대인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교회는 유대인들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아주 빠르게 부흥합니다. 더 강한 박해가 가해지자 교회가 흩어지면서 더 넒은 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지리적으로 넓어지고, 성도가 많아 지는 것과 동시에 유대인과 로마제국에 의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확장과 박해의 시대]라고 부르겠습니다. 교회는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와 바울의 이방인 선교로 인한 이방인 교회로 자라갑니다.


이후에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독교 공인과 380년 데오도시우스 1세의 로마 국교화로 교회는 정식 종교로 인정받고 로마 세계 전체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유대교의 사이비 분파로 취급받으며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고 제국에 반하는 집단으로 지목되어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종교가 그 제국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300여년 만에 하늘과 땅 차이의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사도에서 속사도(교부)로 세대교체가 되었고, 유대교와 로마 권력의 도전이 지나가자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종파들의 거센 도전이 몰아쳤습니다. 교회는 그 도전에 대응하면서 교리를 형성했습니다. 기독론과 삼위일체 교리 등을 체계화 했습니다. 교회는 이후 10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하는 권력이 됐습니다. 그리고 권력과 재물을 가진 교회는 부패해 갔습니다. [교회 권력의 시대]라고 부르겠습니다.


중세 교회는 정점을 지나 부패하기 시작하고, 새로운 시대 정신이 싹트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루터 Martin Luther의 종교개혁(1517년)을 잘 아시겠지만 이전에도 여러가지 운동과 개혁적인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혁의 시대가 무르익던 때 신부이자 교수였던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회 문에 95개조의 신학적 반박문을 게시한 것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됩니다. 츠빙글리, 칼뱅 등이 당대의 다른 종교개혁가입니다. 이렇게 해서 개신교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개신교회는 이 종교개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신앙의 중심은 교권이나 교황의 귄위를 버리고 오직 다섯가지의 신앙지표(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를 세웠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 교회도 자성하고 개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개혁의 시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 다음 세계 역사의 흐름은 제국주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유럽의 각 나라가 해양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여러 지역들을 식민지로 삼아 수탈하던 시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잡아가던 시대입니다. 역설적이게 이 시대는 세계의 문명들을 연결했고, 교회는 식민 제국주의를 통해서 선교의 문을 열어갔습니다. 임진왜란(1592년) 때 이미 일본에 선교가 이뤄져서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일본군에 종군 신부1(Gregorio de Cespedes)가 있었고, 영화 ‘미션’의 배경이 1750년으로 이 시대입니다. 북미 대륙에 백인들이 들어오고 미국과 캐나다가 생긴 것도 이 시대라고 볼수 있습니다. 아주 넓게 본 제국주의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기간을 선교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적 선교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국주의와 선교의 시대]라고 부르겠습니다.


이제 시대가 우리와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기독교가 전해졌을까요? 일설에는 신라 때 당을 통해서 경교가 들어왔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고려시대에 교황이 고려에 선교사를 보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조선 시대에 전해진것으로 인정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천주교와 개신교의 선교가 시대가 다릅니다. 천주교는 조선 말에 실학자들이 새로운 사상으로 중국을 통해 배우고 공부하면서 신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선교 역사에서 아주 특이하게 자발적 선교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천주교 서적들을 중국을 통해 구해 공부했고, 믿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선교사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 신자들은 쇄국정책과 조선의 신분질서와 갈등으로 박해를 받게 됩니다.

개신교의 선교는 공식적으로 1885년 아펜젤러(감리교)와 언더우드(장로교) 선교사가 제물포(인천)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1832년 홍주목 고대도에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상선인 암허스트 호가 들어왔는데 그 배에 통역과 의사로 동행한 귀츨라프 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가 개신교의 선교사였습니다. 고대도에 20일 정도 머물며 조선 조정에 통상을 요청하고 기다렸는데 그 동안 주민들과 만나고 주기도문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감자 농사법과 포도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쳐주고, 한글을 배워 서구세계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또 개신교 선교사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가 1866년에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왔습니다. 미국의 무장 상선으로 강제로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통해서 내륙으로 들어갔는데 배가 좌초했고, 조선군의 공격에 파괴되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참수됐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도 그때 순교하는데, 자신을 죽이는 조선 병사에게 성경을 전하고 죽었습니다. 그 성경을 받은 사람이 박춘권인데 그가 30여년 후에 1899년 마펫 선교사를 찾아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개신교의 선교 특징 역시 특이한데 선교사가 들어가기 전에 한글성경 번역이 먼저 이루어진 점입니다. 중국에서 로스 John Ross 선교사가 한글성경을 번역했는데, 그는 중국에 있던 선교사로 조선에 관심을 갖고 조선 사람들을 만나며 한글로 성경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또 일본으로 유학갔던 이수정이 1883년 신앙을 갖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성서공회의 지원을 받아 1884년에 한문성경에 이두 토를 단 성경을 인쇄하고, 1885년에 순한글본 <신약전서 마가복음셔 언해>를 인쇄했습니다. 드디어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을 합니다. 그들은 이수정을 만나 인쇄된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개신교 선교는 카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시작됐습니다. 대한제국의 인정을 받고 선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서양문물을 통해서 의료기술과 교육제도를 전하며 그야말로 빵과 복음을 함께 전한 것입니다. 학교를 세웠고(배재학당, 이화학당, 연희전문 등) 광혜원, 시병원 등 근대식 병원도 세웠으며 여성만을 위한 병원인 보구여관을 세웠습니다. 광혜원은 후에 미국인 세브란스L. H. Severance의 후원으로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고, 연희전문과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하여 설립된 대학이 연세대학교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선교 역사와 많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후의 우리 역사는 슬픈 기간을 맞게 되는데, 1905년 을사늑약으로, 1910년 한일병탄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우리 민족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측 대표였고, 3.1운동을 전국적으로 연결한 것이 교회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회 역사의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신사참배 참여와 1945년 해방 한달전 7월에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되어 여러모로 신앙의 순수성을 잃고 일본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했습니다.


해방 후 교회는 신사참배 문제 등으로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을 통해 민족과 교회는 다시 한번 큰 아픔을 겪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서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어두운 면도 있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대를 함께하며 교회는 놀라운 양적인 성장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은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전쟁 후 국민소득 67불의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선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양적인 성장을 멈추고 숫자로만 보면 쇠퇴하고 있습니다. 여러 시각으로 볼수 있겠지만 이제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넘어서 질적인 성숙을 이뤄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캐나다 이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요? 두번에 걸쳐서 성경으로 볼수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 그리고 한국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앞날을 보면서 어떤 믿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바라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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