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220장(통일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성경 창세기 9:20~27
요절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23)
성도 사랑, 목사 사랑
공지영의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멋진 종마와 그 말을 돌보는 할아버지 그리고 종마를 사랑하는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멀리 출타하면서 소년에게 말을 부탁했습니다. 소년은 종마와 단 둘이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종마가 병이 났습니다. 괴로워하는 종마에게 소년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원한 물을 먹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종마는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와서 소년을 나무랐습니다. "너는 말이 아플 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랐다는 말이냐?"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정말 몰랐어요. 그러나 내가 얼마나 그 말을 사랑하시는 지 아시잖아요."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말했습니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란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한 말과 행동이 유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상처가 되고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흠이 없을 정도로 의로운 삶을 살았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6:9)는 노아가 그만 큰 실수를 합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옷을 다 벗고는 장막에 누워 잠이 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노아의 그런 실수를 책망하거나 허물을 들추려는 의도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노아의 벌거벗음을 덮어 줄 생각을 하지 못한 함은 저주를 받았고, 아버지의 실수를 보지 않으려고 한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수치에 대해 아들들이 취한 행동이 저주 또는 축복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함이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거나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아버지를 존중하고 사랑하였다 할지라도 그가 취한 행동은 아버지를 노하게 했던 것입니다.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흠은 보려고 하면 틀림없이 보이는 것입니다. 때로는 보지 않으려 해도 보입니다. 그러나 보고도 못 본 체 한다면 고마운 일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끌어안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허다한 허물을 덮을 수 있는 사랑, 사랑의 그 힘과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다른이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이 있는가? 하나님, 셈과 야벳의 마음으로 성도를 사랑하고 목사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허물을 덮어주는 마음을, 실수에 격려를 보낼 수 있는 입술을 주옵소서. 셈과 야벳처럼 축복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동일 목사 / 내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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