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61장(통일 519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성경  마태복음 27:12~14

요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12)



                                                      침묵

 


 

 어느 날, 존 웨슬리를 만난 클라크 박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언젠가 성바울교회의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는데 두 여인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더군요. 한 여인은 무어라고 이야기하면서 몹시 화난 몸짓을 하는데 맞은 편에 있던 여인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서 있기만 했습니다. 제가 막 그들 곁을 지나려고 할 때 그 화난 여인이 주먹을 불끈 쥐고 침착하게 서 있던 여인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외쳐 댔습니다. '말해, 불쌍한 것아! 뭔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이야!'" 존 웨슬리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침묵이 때때로 가장 좋은 대답일 수 있겠다는 것 말입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모습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라는 말씀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면서 한 마디도 대답을 안 하시는 그의 침묵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 속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에 대한 예수님의 침묵은 당시 권세 있는 재판관이나 장로들을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은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죽음의 자리에서도 자신을 위한 변명은 불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 우리를 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침묵하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도말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자리까지 가셔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말들을 쏟아 놓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거나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수많은 변명과 핑계를 늘어 놓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때로는 침묵하는 것이 가해자인 상대를 부끄럽게 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방편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죄를 들춰 내어 고발하시지 않고 침묵하시면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이웃 사랑을 위해 침묵할 수 있는가?

 

하나님, 나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왜곡하여 말하고, 사람들을 정죄했던 잘못들을 용서하고 주옵소서.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변명하기보다 침묵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침묵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제민 목사 / 천안목양교회)